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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OOO.

유럽 배낭여행 중의 일이다. 첫 여행지였던 영국 런던을 떠나 스페인 세비야로 가는 길이었다. 동행과 일정상 며칠 떨어져 처음으로 홀로 다니게 된 나는 겉으로 긴장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두배로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였다.

나는 일찍 비행기에 올랐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대략 두세 개씩의 좌석이 있는 기종이었다. 저가 항공답게 좌석은 매우 비좁고 딱딱했다. 그래도 다행히 복도 쪽 자리니까.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비행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쳐다보던 중에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녀는 몸집이 매우 컸고 거동이 불편해서 지팡이와 승무원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절뚝. 설마 내 옆은 아니겠지. 절뚝, 설마, 절뚝, 절뚝, … 그들은 마침내 내 옆에 멈춰 섰다. 가까이에서 본 그녀는 생각보다 더 큰 몸집이었다. 뒤에 그녀와 닮고 안경을 쓴 한 명의 여성이 더 있다는 걸 눈치챘을 무렵에 뒤의 여성이 내게 말을 건넸다. “안녕, 정말 미안한데 내 언니가 몸이 많이 불편하거든. 혹시 너가 안에 앉고, 언니가 바깥쪽에 앉아도 될까?” 몸이 불편한 할머니는 곤란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하죠.” 나는 냉큼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그녀가 자리에 앉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나는 좌석 사이의 팔받침대를 올려야 했다. 옆자리가 낯선 아저씨였으면 절대 올리지 않았을 텐데. 그녀가 자리에 앉자 내 자리의 절반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나는 낯선 이와 허벅지를 맞댔고 어깨는 잔뜩 움츠러든 채 꽉 끼어버렸다. “휴, 고마워. 내가 좀 빅(big)-하잖아” 할머니는 껄껄 웃으면서 복도 건너 앉은 동생에게 선글라스를 건넸다. 할머니가 지팡이를 주섬주섬 정리하느라 몸을 들썩이는 동안 나는 끼어버린 몸에서 오는 불편함과 대조되는 그녀의 유쾌함에 어리둥절한 채로 몸도 머리도 옴짝달싹 못했다. “오, 불편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 너는 이름이 뭐야?” 그렇게 나는 일흔이 넘은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는 파키스탄 출신이고 영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여동생과 함께 스페인에 사는 다른 동생을 보러 가는 길인데 동생 집은 세비야에서 한번 더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에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왔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오!” 하며 감탄하더니 갑자기 “아/녀\하-새오” 라는 한국말 인사를 건넸다. 세상에, 유럽 상공의 작은 비행기에서 벽 사이에 끼인 채로 파키스탄 할머니에게 한국어 인사를 들을 줄이야. 놀란 내게 할머니는 자신의 며느리가 한국인이라고, 며느리가 종종 김치를 가져와서 자신도 맛있게 먹는다며 얘기를 꺼냈다. 한국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선 김치와 불고기, 유나킴과 지송팍이 최고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그녀는 정말 수다가 많은 사람이었다. 한국은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며, 너는 대학에서 어떤 걸 공부하니? 두어시간 동안 그녀의 여동생이 배낭에서 꺼내 준 빵을 뜯어먹으며 한국 사회, 무더운 세비야의 날씨, 파키스탄 음식, 가족관계, 유럽여행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그녀는 더웠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그 틈을 타서 잔뜩 움츠러든 내 어깨와 엉덩이의 감각을 되찾으려 몸을 조금씩 뒤척이려던 찰나에 그녀가 상체를 숙이고 가방을 뒤적거리는 바람에 또다시 꽉 끼어버렸다. 대화의 즐거움과는 별개로 낯선 사람과 맞닿은 내 오른쪽 겨드랑이와 허벅지는 땀으로 축축해지고 있었다. 두 시간짜리 비행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잠시 숨을 고르던 내 눈앞에 갑자기 찢어진 종이가 불쑥 나타났다. “너 펜 있니? 여기에 이메일 주소를 써줄래? 메일 보낼게.”

덜컹, 하며 비행기의 뒷바퀴가 활주로에 닿고 마침내 앞바퀴까지 착지하자 비행기에선 빵빠레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도 박수를 치며 말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정말 유쾌해!” 내가 보기엔 그녀도 정말 유쾌했는데 말이다. 이윽고 사람들이 다 내렸지만 그녀가 내리기 전까지 나는 내리지 못할 운명이었다. 안쪽에선 내가 왼팔을, 복도에선 그녀의 여동생이 오른팔을 부축해서 그녀를 일으켰다. 그녀는 한 줄 한 줄 좌석 헤드를 짚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복도 끝에선 휠체어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가! 즐거운 여행되길!” 그녀는 휠체어에 앉으며 내게 인사했다. 나 역시 안전한 여행이 되시라며 두 자매에게 인사를 하고 얼얼한 몸을 움직이며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약 일주일 후에 짧은 메일이 왔다. 그녀의 여동생으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만나서 반가웠고 함께 해서 즐거웠다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Love. OOO. 왠지 모르게 울컥해졌던 나는 답장을 하지 못하고 메일을 닫았다. 그렇게 나는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고, 개강을 해서 바쁜 학교생활을 보내다 보니 여행의 기억들도, 과제 메일 더미 속에 그녀의 이메일도 잊혔다. 여행의 추억은 일상으로 지워진다는 참으로 진부한 결말이지만 일 년에도 몇번씩 그녀와 이메일 생각이 났다. 나는 왜 답장하지 않았을까. 메일주소를 적으면서 속으로 이유없는 호의는 없다고 의심한게 부끄럽고 미안해서였을까, 아니면 타인의 친절을 온전히 받아들이는게 두려웠던걸까. 답장하기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매번 합리화했지만 인생 투두리스트에서 지우지도 못하고 쌓아만 두다가 어느새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때 보냈다면 지금보다는 덜 늦었을 텐데. 지금은 정말 늦었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6년만에 답장을 보냈다. 답장이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당신 자매와 함께해서 나 역시 매우 즐거웠다고. 덕분에 긴장을 풀고 나머지 여행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당신이 건네준 따뜻함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답장을 보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지만 당신 자매의 안녕을 종종 빌어왔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안녕하길 바란다고.

Love. O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