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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인 나는 기후위기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모든 결정은 거대 자본에 방만히 맡긴 채 1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바꾸고, 15분 동안 식사를 하기 위해 4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을 플라스틱 용기들을 쓰고, 매년 5천 마리의 오랑우탄을 죽여 가며 팜유로 가짜 초콜릿과 라면을 만들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p.44)

요즘은 환경과 기후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많은 이들에게 그랬듯 이번에 내린 엄청난 강수량의 장마 - 라고 불리는 기후위기의 징후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건 코로나 시대의 명제지만, 더 많은 것들이 비가역적인 방향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 같다. 머지 않은 미래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다’라는 표현도 마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과거를 일컫는 말로 쓰일지도 모르겠다. 한순간의 편의를 위해 누렸던 것들이 자연과 동물, 사람을 착취해왔고 때때로 그걸 알면서도 모른척한게 부끄럽다. 오늘은 밖에 나가기 싫으니까 배달음식 시켜먹어야지. 어차피 재활용률도 낮다는데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리자. 이런 생각과 행동들.

우울감

무엇보다 멸종이 끔찍했다. (중략) 사람들 눈에 귀여운 종이 완전히 사라지면 ‘아아아’ 탄식한 후 스티커 같은 것이나 만들었다. (중략) 잘못 가고 있다는 그 느낌이 언제나 은은한 구역감으로 있었다. 스스로 속한 종에 구역감을 느끼기는 했어도, 끝끝내 궤도를 수정하지 못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p.45)

기후 위기와 환경을 생각할 때는 늘 무력하고 우울하다. 신경쓰는 사람들만 열심히 한다고 방향이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끝끝내 궤도를 수정하지 못했다’라고 기록할 틈도 없이 모든게 끝나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올해는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중에 수해 피해자가 없지만, 이기적이게도 내년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나처럼 기후위기와 환경에 대한 피해를 겪거나 알게되면서 불안감을 겪는 사람이 많아졌고 이걸 climate anxiety 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아무도 믿지 않은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한 카산드라처럼 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만성적인 우울과 분노를 겪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모든게 정말 걱정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를 집어들고 우산을 챙기면서 느낀다.

IT업계의 탄소 발자국

내가 속한 IT업계에서 ‘성과’는 대부분 얼마나 많은 클릭/조회/구매가 이루어졌는지에 기반한다. 분기마다 더 많은 사용자, 더 많은 스트리밍, 더 많은 구매액을 목표로 다같이 으쌰으쌰하며 고깃집으로 회식을 갈때면 어쩐지 느낌이 이상하다. 과잉생산 과잉소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종종 괴리감이 든다. 그렇게 번 돈으로 친환경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걸 보면 양가감정이 든다.

정확한 통계를 찾기는 어렵지만 IT업계의 탄소배출량은 대략 2~4%를 차지한다. 이메일 한통은 4g을 배출하고 첨부파일이 있으면 50g까지 늘어난다. ‘전체답장’은 자제하는게 좋다는 말을 보고, 회사에서 관습적으로 불필요한 메일을 많이 보내고 받는게 떠올랐다. 한 번의 구글 검색은 0.2 ~ 7g 정도를 배출한다고 한다. 7g은 주전자를 한번 끓이는데 배출되는 양이라고 하는데, 검색엔진이 인덱싱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와 빠른 응답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를 생각해보면 7이라는 숫자에 경의도 느껴진다. 어찌됐건 불필요한 검색은 굳이 하지 않는게 좋겠다. 대략 십년 전 자료지만 AWS도 리젼에 따라서 탄소 배출량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싱가폴보다는 온도가 낮은 한국 리젼이 서버냉각에 전기를 덜 써서 탄소도 덜 배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젼별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IT 서비스는 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앞에서는 몰라도 되도록 아주 매끄럽게 봉제선없이 이루어지기에 내 행동의 영향을 되돌아보기가 어렵다.검색 하나를 위해 해저케이블을 몇 번 통과해야하는지, 몇 개의 데이터센터와 서버를 거쳐야하는지, 그 모든 에너지의 원천이 화력인지 수력인지 원자력인지. 알면 더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You don’t have to know where we’ll end up. You just have to know what path we’re on.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온라인에 많은 자료가 있는데, 나는 배달 서비스 줄이기/머그컵 사용하기/패스트패션 소비하지 않기/육식 줄이기 정도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긁어 부스럼일 수도 있다. 어떤 채식은 육식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기에 식재료가 내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행기를 타고 왔는지, 생장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열을 필요로 했는지도 따져봐야한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다. 너무 많은 것들이 연결되어있어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가 어렵다. 만약 환경을 착취하지 않지만 사람을 착취한다면? 이쯤되면 늘 무엇인가를 착취해서 유지되는 사회에 환멸이 난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를 찾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환경과 착취에 대한 고민은 당장의 허기와 스트레스 앞에서 내일로 미뤄진다. 환멸과 괴리감에 파묻히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다.

개발자인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다루는 데이터의 크기만큼 전기가 많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있었지만 그걸 ‘탄소 발자국’과 연결해서 생각해본 건 최근이다. 비효율적인 코드는 더 많은 컴퓨팅파워와 리소스를 쓰기에 더 큰 탄소발자국을 남긴다. 컴퓨팅 리소스가 부족하지 않은 업무환경이라서 간단한 로직개발을 할 때도 종종 ‘다시 돌리면 되지’하는 마음으로 코드를 짜고 테스트를 돌리고를 반복했는데, 앞으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잉여는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물론 한두번 더 돌린다고 기후위기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타협하는 순간들을 줄이고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삶에서 괴리감과 우울함의 엔트로피를 줄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어쨌든 살아야하니까. 쓰고보니 많은 부분이 삶을 간결하게 하는 것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일단 스트레스가 덜한 휴일에는 채식을 해보려고 해야겠다.


참고/인용